개발자 커리어를 처음 시작했던
의료 AI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석박 출신의 딥러닝 개발자들이
알고리즘에 미쳐서
신나게 모델 연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종족적 벽을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데이터는 내 길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마케팅 분야의 경력이 눈에 띄어
개발보다는 기술영업에 가까운 업무를 도맡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것이
나를 더 개발자로 살고 싶게 만들었다.

터미널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사용자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우리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의 갭을 발견하게 되었고,
서비스 개발팀과의 소통 기회도 잦아졌는데,

문제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아 그건 안 돼요.'

아니 이게 왜 안 된다는거지..?

사용자가 있기에 서비스가 있는 것인데,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은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해본다.'

그렇게 내 개발 인생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2022년 1월,
위코드 프론트엔드 개발자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파이썬을 처음 공부하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더이상 언어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었다.

대신,
내가 만든지도 몰랐던 오류로 밤을 새우고,
고작 클릭하는 기능 하나 만들다 밤을 새웠다.

'아 그래서 안 되는 거였구나...'
늘 초췌한 모습으로 한숨 섞인 '안돼'를 연발하던 그 개발자 분께
죄송한 마음과 연민이 생겼고,

무슨 종교인지도 모른 채
터미널에 기도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너무 힘들어도 너무 재밌었다는 점이다.

생각을 글, 그림, 영상으로 표현하는 일을 해오던 나에게
프론트엔드 개발은
그 표현 범위를 3차원 이상으로 확장시켜 주었고,

아이디어가 눈 앞에 실현되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프론트엔드 기술 자체 뿐이 아니었다.

개발자 문화는 나에게 유토피아로 다가왔다.

마케팅 업계는
아이디어가 곧 자산이기에,
공유 문화를 크게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에
홍보/마케팅 콘텐츠의 흥망성쇠는
너무도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가름 났다.

게다가
진보 진영마저 보수적인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일은
상상마저 금기였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알고 살아왔는데,
개발 업계는 달랐다.

본인이 아는 기술을 알려주고 싶어 혈안이 된 사람들이 차고 넘치며,
피드백과 토론으로 함께 성장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데다가,
성능을 측정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분명했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당연한 동네였다.

이 미친 유토피아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위코드 과정중 협업했던 스타트업의 제의를 받아
수료 직후 프론트엔드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9개월 뒤,
나는 또 퇴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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