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었나,
나는 구구단을 엉엉 울면서 외웠다.

누구한테 맞아서 운 것이 아니라
안 외워지는 게 화가 나서
내 머리를 마구 치면서 울었다.

그리고 곧이어 소수를 배웠다.

3 나누기 4가 0.75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
수학이 되었다.


크래프톤 정글 부트캠프에 들어온지 2주가 지나고,
코치님이 개별 면담을 요청했다.

"경원님, 전체 42명 중에 꼴등이에요"

동료들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한참 뒤쳐져있음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진짜 그렇다니 자존감이 뚝 떨어졌다.

"자극이 좀 되셨나요?"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꼴등이 된 것으로 생각하시는 듯 했다.

좌절스러웠다.

음치지만 가수해볼래!
당차게 외친 2주만에,

어, 너 음치 맞고, 가수 안 맞아
라고 공증을 받은 것이다.

코치님은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과정에서 중도 퇴출될 수 있다 하셨다.

나는 웃는 얼굴로 인사드리고 나왔지만,
화장실에서 한시간을 펑펑 울었다.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공부하던
첫 2주동안

마음으로는
구구단을 외우던 때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를 치면서 울었다.

그렇지만 꼭 이해하고 싶어서,
끝까지 가보고 싶어서

내 페이스대로 걸어나가보자.
일단 뭘 모르는 지까지만 알고가자.
공부는 과정 끝나고나서 더하면 되지.

하면서 나를 다독이며,
한걸음 한걸음 꽉꽉 밟아 매일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지도도 완성하고,
내가 헤매는 구간이 어디인지 기록을 남겨두었다.
다시 찾아와서 공부하려고.

그러나 너무 초조했다.
동료들,
아니 나보다 5살, 8살 어린 친구들은
저렇게 금방해내는데,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있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의 데드라인은 아직 모르니까,
초조할 것 없이 꾸준히만 하자고 생각하며,
나를 또 다독였었다.

그러나 나의 느린 방법은 틀린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문과식 사고에서 벗어나세요

진도를 빼는 데 걸림돌이 되는 구간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왜 이 상황에서 이 알고리즘을 쓰는지,
왜 이 문제를 이렇게 구현해야 풀리는지,
그걸 이해하는 게 오래걸립니다."

라고 답했더니,
돌아온 답이 저것이었다.

" 모르겠는게 당연하다,
엄청난 석학들이 아주 오랜시간 고민해서 만든 결과물을
어떻게 금세 이해하겠나,
일단 외우고 넘어가라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다. "

자꾸 <왜>를 던지면서
전부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때 수학등급이 안 나와서
방학동안은 다른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수1 쎈문제집만 몇번을 달달 풀고,
1등급으로 끌어올렸던 기억이 났다.

그래... 그 때처럼 하자
원리고 구조화고 배경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자
기계처럼 반복하고 쑤셔넣자 

그렇게 새로운 일주일 동안은
그냥 풀이를 다 외웠다.
과정을 이해못해도 그냥 다 넘어갔다.

그리고 돌아온 시험 날,
나는 또다시 한 문제도 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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