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을 외울 때
나는 너무나 답답했다.

왜 2 곱하기 9가 18인지 이해가 안 됐다.
왜 내가 이걸 외우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이걸 내 머리 속에
어디에 어떻게 저장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3 나누기 4도 마찬가지였다.
왜 3보다 큰 수인 4로 3을 쪼개려고 드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근데 그 상황에서 아무튼 쪼개진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근데 그 답을 갑자기 0.75라고 하고 외우라고 하니까 미칠 노릇이었다.

얘를 도대체 어디에 집어 넣어야 하나... 하면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

나는
몸으로 하는 건 그냥 생각 없이 하는데,

머리로 하는 건
내가 꼭 직접 쓰임에 알맞는 칸을 만들고
정확하게 집어 넣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 머릿속 도서관에
새로운 책이 물밀듯이 들어오는데,

그걸 그냥 제목만 보고
대애충 구역지어서 쌓아만 놓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는 것이다.

그러다 스트레스 상태가 지속되면,
책을 더이상 안 받아 버린다.

그리고 쌓인 책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아주 많이 투자한다.

추상적인 개념 습득에 대한 융통성이 빼어나면,
아무데나 슥슥 집어넣고 활용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렵다.


이 방식이
삶을 사는 데
옳은지 그른지
이득인지 손해인지는 모르겠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조직에서는
꼴찌로 낙인찍혀 퇴출될 수도 있으니
손해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내가 할줄 모르는 부분은 당연히
그 분야 꼴찌이지.

그럼 또,
내가 할 줄 아는 영역에서는
뭐 꼴찌가 아니니까
옳게 살고 있고, 유리한 것인가?


나는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하면서
3 나누기 4에 대해 다시 고민해본 적이 있다.

아,
안 나눠지니까.
3개인 것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서
꾸역꾸역 4세트로 묶고 싶었구나.
그래서 그 3개였던 것들을 어떻게 쪼갰더니
4세트 중 하나의 구성원이 되었는지.
그걸 표현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1을 더 쪼개서 0. 단위까지 만들어서 표현했구나.
했었다.

나는
어떤 초딩이 3 나누기 4에서 헤매고 있다면
가서 천천히 알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냥 0.75라고 하기로 약속한거야' 다그치는 어른말고.

아마 그 꼬마와 대화하는 분야에서는
내가 1등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못하는 걸 잘하고 싶은 인생을 사는 어른이라서
꼴찌는 영영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꼴찌여서 어떻고, 아니어서 어떤가?
인생에는 옳고 그름이 없는데 말이다.

모르는 걸 알게 되고,
못하는 걸 잘하게 되는 건

나에게 정말 멋진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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