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급 운동선수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인생이 끝난듯이 괴로워하다가

불굴의 의지와 혹독한 재활훈련으로

다시 정상에 오르는 스토리...

를 너무 많이 봤을까?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데 실패한 내가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혹독한 재활훈련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2022년 말, 일을 그만두면서

나는 나에게

<인생 실패>, <재기 불가>를 진단했다.

데이터로 일해보겠다며

4년간 몸 담았던 정치권을 뛰쳐나와

무작정 개발 일을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나

서른 둘이 된 시점에도 

소규모 스타트업 신입 개발자에

머물러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가 진단(?) 초기에는

성공으로 가는 길의

고비를 넘고 있을 뿐,

실패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며

 

고비를 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재취업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용두사미 작심삼일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성취 없는 나에 대한

자기혐오가 점점 커져갔고,

 

급기야는

'난 역시 <인생>이라는 종목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결론과 함께

무기력과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렸다.

 


 

그러나

인생 질을 그만두고

저세상 치킨집을 차리기란 쉽지 않았다.

수없이 괴로운 밤을 지내고도,

매일 아침 내 몸뚱이와 멘탈은

어김없이 배고프다, 놀아주라 울어대며

나를 깨웠고,

이런 나새끼에게

여전히 사랑을 퍼주는 우리 가족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잠 못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지를 다시 불태우고 싶어

온갖 것을 읽고 듣던 중

네덜란드 심리학자 호프스테더의

문화 차원 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국가의 문화적 경향성을 분석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를 비교해 놓은 자료를 보니,

'<국룰>에 맞는 삶을 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별안간

'재활은 역시 해외 전지훈련이지!'  라는

급처방이 머리에서 내려졌다.

To. 나새끼님,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혹독한 환경에 놓이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보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고,

이는 인생 재기 훈련의 동력이 되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쾌차를 빕니다....

From. 내뇌

 


 

부모님도, 친구도, 지인도, 친언니 외엔 아무런 네트워크도 없는 곳.

한국어도, 학력도, 경력도,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곳.

집도, 자주가던 식당도, 나만의 힐링 스팟도, 아무데도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마치

몸만 큰 아이로 새로운 땅에 태어난듯이

처음부터 다시 산다면

 

첫째,
당장 생존하기 위해
'인생이란 무엇인가' 같은 고민따윈 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앞만 보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멋진 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백지 상태로 시작한 덕분에
인생이란 종목에서
기가 막히게 잘 통하는
나만의 기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기대가 생겼다.

 


 

쾌차에 목마른 나는

워킹홀리데이 지원 자격이 박탈되기 6개월 전,

서둘러 홍콩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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