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욕망과 마주하다.
퇴사를 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한두 달만 공부하면 더 큰 곳에서 많이 성장할 수 있을거야'하는 믿음으로 시작한 백수 생활이
20개월을 넘어섰다.
이전의 믿음은 너덜너덜해져버렸고,
'한두 달만 더 늦어지면 어디에도 못 갈거야'하는 불안감이 나를 잠식해가고 있다.
내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삶은 의미 없어'라며,
지난 스무 달을 가치 없는 시간으로 치부해버린 탓이다.
그러나 또다른 나는
삶이 설령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만두고 싶지 않아 한다.
(여기서 지남철은 나침반의 바늘을 뜻한다.)
어디서 이런 글을 찾아내고,
감동하는걸 보면 말이다.
오늘은
나에게 불안감과 좌절감을 퍼붓고도,
또 살고는 싶다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나와
대화를 좀 해보려고 한다.
제발 그 지랄맞은 성미를
굳센 동력으로 바꿔서
내 지난 시간의 의미도 되찾아주고,
너덜너덜해진 믿음도 다시 빳빳하게 세워주고,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기를 바라며..
2. 욕망에게 이별을 선포하다.
내 욕망은
조직의 리더가 되어, 조직원과 함께 어떤 일을 성취할 때
가장 만족스러워한다.
초등학교를 다닐 땐,
학급에 모임을 만들어 교실 꾸미기부터 주말 소풍, 연극 등 각종 이벤트를 주도하며
발랄하고 귀여운 성취감에 기뻐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이 되어서 학생 자치회를 활성화시키고, 축제의 학생 참여도를 끌어올리며
꽤나 자랑스러운 성취감에 희열을 느꼈다.
그러다 대학교를 다닐 땐,
의무 교육의 바깥 세상에서 온갖 새로운 경험에 정신이 팔려
성취니, 리딩이니 잠시 잊어버리고 지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
사회에서는 그저 무력한 갓난 아이일 뿐인 나와 마주하게 된 욕망이
그걸 알면서도 '성취감을 달라' 떼를 쓰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욕망: 빨리 리더가 돼. 성취감 줘.
나: 먼저 전문성을 갖춰야 어디선가 리딩을 할 수 있어.
욕망: 그럼 빨리 전문성을 갖춰.
나: 어디에서 전문성을 길러야할지 모르겠어.
욕망: 언제 정할건데? 빨리 찾아.
나: 일단 여기에서 전문성을 길러볼게.
욕망: 언제 돼? 거기는 재능 없는거 아니야?
나: 그런가.. 다른 데로 가볼게
욕망: 애걔- 고작 이 정도 성취감으로 만족하라고?
나: 미안.. 좀더 준비해서 크게 만들어볼게
욕망: 언제 돼? 너 그냥 거기도 재능 없는거 아니야?
나: 그런가...
욕망: 언제 돼? 되긴 해? 너 그냥 아무 재능 없는 거 아니야? 끔찍하다..
나: 그러게...
나는 더 빨리, 더 큰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갈아넣어 일을 해댔지만
욕심의 끝없는 재촉은
불안감을 점점더 증폭시키고, 자존감을 숭덩숭덩 도려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지쳐 나가떨어져,
삶을 포기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나: 야, 난 감당 못하겠다. 다른 사람 찾아.
욕망: ???????????
3. 욕망의 회유에 넘어가다.
욕망이 벼랑끝에 선 날 불러 세웠다.
내 삶이 무의미하고, 한심하다 한 장본인이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어 나타나서는
이제와 그렇지만은 않다 한다.
욕망: 더이상 어렸을 적 그 시절이 아닌데, 그때 만큼의 속도와 크기를 기대했어. 미안해. 천천히 해보자. 느긋하게 기다릴게.
나: ????
욕망: 아무 재능없다는 말도 취소할게. 너 어릴 때부터 잘하는 거 많았잖아. 전체를 보는 눈, 그러면서도 디테일 챙기는 세심함. 언제나 반추하고 성찰하는 태도. 어려운 것이라도 반드시 내재화해내는 열정. 추상적인것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해내는 센스. 분명 재능 있어. 뭐든 성취할 수 있을거야.
나: 숫자로는 증명 못할 허울만 좋은 장점들. 그게 지금까지 무슨 성과를 가져왔니? 난 재능있는 분야가 없는게 맞아. 심지어 끈기도 없어.
욕망: 꼭 국가대표급으로 잘해야 재능이 있는건 아니잖아. 작은 회사라도 어딘가가 너와 함께 하고싶어 한다는건, 네가 그 분야에서 어떤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얘기지. 끈기도 마찬가지야. 상대적인거야.
나: 그치만 넌 작은 성취로는 만족 못하잖아. 장기적인 성장은 불가능할 거라고 불안해 할 거잖아.
욕망: 내가 너무 큰 성취의 단맛에 젖어있어서 그랬어. 큰 성취가 아니면 못 살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그냥 네가 없으면 못살아 난.
나: 거짓말
욕망: 믿어주라. 난 네가 갈망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최소한 내가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할 지가 명확하니까.
이 놈..
삼십삼년 함께한 세월은 절대 무시못한다.
나를 제대로 구슬릴 줄 안다.
점차 흔들리던 나의 마음은
마지막 말에 완전히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래, 난 늘 행복하진 않을 수 있지만
정말 다행인 사람이다.
불안감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적어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는 명확하게 알고있으니까.
목표 달성으로부터 오는 성취감.
함께하는 이들과 만드는 신뢰감.
성장과 발전으로부터 오는 희열감.
나, 그리고 욕망은 이걸 먹고 살아낸다.
정글같은 삶 속에서 이 열매를 찾아나서야 하니, 힘든 것은 당연하다.
내가 호랑이도 사자도 아니라서 그들보다 몇 배는 느리고 어려울 수는 있다.
하지만 토끼는, 개미는, 플랑크톤은 그 만큼 배가 작지 않은가?
뭘 먹어야 하는지는 아니까 그걸로 되었다.
내 손으로 독초를 찾아먹어 죽을 일은 없을테니.
그래,
나는 북극성을 찾는 나침반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4. 욕망과 화해하다.
불교에서는 아귀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 인간이 가진 욕망의 습성을 설명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렇게 불행하게 구천을 떠도는 귀신.
그게 바로 나다.
근데 뭐 어떡하나?
내가 탐진치를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해탈의 반열에 오를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인정해보려한다.
내 고통의 근원이 욕망에 있음을.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것은 또 욕망 덕분임을.
그래서 고통없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음을.
그것이 인간이니까..
욕망아..!
난 우리의 지랄병이 다시 도질 수 있다는 걸 알아.
그치만 최대한 자제해보자.
나도 우리 먹거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볼게.
우리 그렇게 잔잔하게 다투면서
가끔 행복도 하면서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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